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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마당

시국수습방안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국민들의 관심은

‘18년간 유지해온 이 거대한 권력의 공백을 누가 메울 것인가’

에 쏠렸다.  당시 헌법은 ‘대통령이 궐위한 때에는 3개월 안에

후임자를 뽑는다. 후임자는 전임자의 잔여 기간까지 재임한다’고

규정. 박정희 대통령임기는 1984년까지 5년간의 잔여임기가 남아.

그러므로 헌법에 따라 1월26일까지는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을

통한 대통령, 이른바 통대선거로 후임자를 선출해야 하는 상황.


 유신을 끝내기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체육관 선거로는

유신세력이 대권에 나설 것은 뻔한 일이었다.  문제는 3개월 이내에

선거를 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 헌법을 위반할 수도 없었다.


당시 비상시국회의안의 골자는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고,

그 대통령은 현행 헌법에 규정된 잔여 임기를 채우지 않고 새로

제정되는 헌법에 따라 선출되는 새 대통령에게 정부를 이양한다.  


아버지 신현확은 이 안을 언론,학계, 경제계, 여야 정치인, 외국대사

등 각계의 의견을 청취하였다.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호의적이었다.

아버지는 이안을 정식 국무회의에 제출하여 동의를 얻어냈다.

그러면 누가 통대선거에 나갈 것인가?  6인비상시국회의에서 거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은 또 아버지가 말을 할 수밖에

 “지금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통대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면

헌법을 고치고 하면서 1년은 관리정부를 이끌어가야 하는데,

지금 관리정부 책입자인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으로

출마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다들 그게 좋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작 최대행은 손사래를

치며 “아이고, 나는 못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애깁니까? 이런 국가 위기에 권한대행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앉았으면 응당 관리정부를 이끌어갈 책임을 지셔야……..”

“아유, 내가 그걸 어떻게 합니까? 제발 그런 말 마십시오. 이만 회의

끝냅시다.”

“아니, 이거 결정짓고 갑시다.! 어쩌자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나옵니까?”

밤늦게까지 옥신각신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최 권한대행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일각에서는 최 권한대행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솔솔 흘러나왔다.  

 “저 양반 저래서는 대통령 당선돼도 걱정입니다. 관리내각 이끌면서

위기 관리업무나 제대로 완수해냈습니까? 저 양반 성격이나 지금까지

한 일을 볼 때 적임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이 기회에

추진력 있고 지도력 있는 분이 나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아버지가 들어라는 듯이 계속해서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이거 보시오! 당신들 하는 말이 뭔지 눈치 못 챌 만큼 내가 바보도

아니고, 무슨 얘기 하는지 알겠소. 국가 위기요! 마음을 한 데 모야야

합니다.  다음에 또 이런 소리가 들리면 용납하지 않겠소.”

최 대행의 우유부단함에 더는 끌려 다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튿날 아버지는 비상시국회의 구성원들을 회의 전에 따로 만났다.

“이제 더는 시간을 허비할 수 없소. 오늘 결판을 냅시다.  최 대행이

출마하는 걸로 내가 최종 통보를 할 테니. 당신들도 그렇게 알고

뒤에서 지원해주시오.”


 회의가 시작되었다. 출마 이야기가 나오자 최 대행은 또

“아이고, 내가 그걸 어떻게 합니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라고.

“더 생각하려면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우리 비상시국회의는

오늘부로 최규하 대통령 권한 대행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결의하고.

지금 이 순간부터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하나같이 “결의합시다.”하고 외쳤다.

“아…… 아니……… “당황한 최 대행은 주위를 둘러 보았으나.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여야 정치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시국수습안을 공유하고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공화당의 김종필 고문이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소문

이 돌았다.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계속)


유신정치의 대표라 할 김고문이 출마한다면 비상시국대책회의가

기껏 만들어놓은 시국수습안의 핵심정신도 무너지고,

유신정치 철폐를 바라는 국민들도 납득하지 못하고 나라에 혼란만

초래할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김종필 고문과 담판을 짓기 위해 단 둘이 만났다.

“헌법을 고쳐 3김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겠소.  공정하게

선거해서 이기면 되는 것 아니오?”

“지금 나가면 이길 수 있는데 내가 왜 기득권을 포기합니까?

일단 잡고 보자는 거예요. 내가 잡고 공화당이 재집권하면

부총리께서 펴고 싶은 정책 다 하게 해드릴 텐데 왜 그러십니까?

그리고 내가 군복 벗은 지가 언젠데 유신정치 운운하십니까?

나도 박 대통령치하에서 탄압받은 사람이에요!

내가 일단 잡고나서 얼마든지 유신 잔재 없애고 민주화된 사회

만들어나갈 수 있어요.  아니, 부총리께서도 공화당원이신데

인간적으로 저를 밀어주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김고문, 개인적인 감정이 있거나 당신이 집권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가 아니오.  여야의 문제를 떠나서 지금 위기 관리를 잘하지 못하면

국가가 더 큰 위기에빠지고 무너질 수도 있는 심각한 상태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최악의 사태를막으려고 그러는 거요.”

의견을 좁힐 수가 없었다.

“부총리께서 말리셔도 나는 출마하겠습니다.”

“김고문이 마음대로 할 것 같으면, 나도 도리 없소.  국가 관리를 책임

지고 있는 입장에서 나도 내 할 대로 하겠소.”


회동은 이렇게 끝났다.

합의는 안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강경한 태도 앞에서 김종필 고문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정치적 욕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정관계에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한번 작심하면 그 힘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박준규 당시 공화당 의장서리를 김 고문에게 보내 그의

출마 의지에 쐐기를 막았다.  대구고보 후배인 박의장은 아버지와

여러 모로 인연이 깊은 사람이었다. 외조부가 박준규의장 일가의

주치의를 지내고, 아버지의 선배인 백남억 씨가 그의 매형이었다.

박의장은 김종필 고문에게 아버지의 시국수습안에 합의해주면

당의장 자리를 내놓겠다고 제안했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결국 김 고문은 박의장의 제안을 수락하였다.

공화당이 별도의 대선 후보를 내지 않기로 최종 결정한 1979년

11월 10일,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아버지의 시국수습안을

골자로한 “시국에 관한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최 대행은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제 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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