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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마당

신현확의 증언

야밤의 비상국무회의


1979년 10월 26일 밤은 차고 맑았다.

열흘 전인 17일 밤에도 부산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 문제로

임시국무회의가 열렀지만 장소는 중앙청이었다.

전시가 아니고서야 국방부에서 국무회의를 한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전방에 무슨 일이 있나?.....”

신현확 부총리는 11시가 다 된 시각에 용산 국방부 청사에 도착했다.

무장한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국방부 복도에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그들의 긴장된 얼굴은 이것이 단순한 상황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부총리님!” 김성진 문공부장관이 빠르게 닥아왔다.

 “왜 국무회의가 소집됐습니까?”

 “대통령께 무슨 이상이 생긴 것 같은데 김재규 부장이 알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지 않고 자꾸 계엄령을

펴야 한다고만 합니다. 부총리께서 잘 달래서 이 사태를 처리하셔야

겠읍니다.”


장관실로 들어가니 최규하 총리는 고개를 숙인 채 국방부장관

자리에 앉아 있고, 그 바로 옆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비서실장, 내무 법무 국방부장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둘러

앉아 있었다.  “아,부총리! 나 좀 잠깐 봅시다.”

최 총리는 장관실 옆 작은 방으로 부총리를 이끌었다.

김재규 부장도 방으로 들어왔다. 문이 닫히자

 “무슨 일입니까?”했더니

김재규 부장이 대신 나섰다.

 “지금 시급히 비상계엄령을 선포해야 합니다.”

 “갑자기 웬 비상계엄입니까?”

 “각하가 지금 유고 상태입니다.  이사실을 김일성이 알면 큰일

아닙니까.  최소 48시간은 보안을 유지하고 빨리 비상계엄령을

선포해야 합니다.”

 “유고?” 부총리는 최총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석상처럼

입을 봉한 채 앉아 있을 뿐이었다.  부총리는 김재규에게 물었다.

 “유고의 내용이 뭡니까?”

 “그것은 밝힐 수 없습니다.”

 “다치셨습니까?  아니면 갑자기 병이 났습니까?”

 “그건 밝힐 수 없습니다.  비밀에 부쳐야 합니다. 빨리 비상계엄령

을 선포해서……”

부총리는 탁자를 두드리며 호통을 쳤다.

 “아니!밑도 끝도 없이 계엄이라니요! 국무위원이 대통령 유고의

내용도 모르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니, 선배님, 그게 아니라……”

부총리의 서릿발 같은 호통에 기가 죽은 김재규 부장은 우물쭈물

말꼬리를 흐렸다. 그의 얼굴에는 땀이 번들거리고, 목소리엔 초조함과 짜증이 배어 있었다.  

 “글쎄,유고 내용을 자세히 밝히라니까요!”

 “거 다 알 만한 분이 왜 이렇게 따지고 듭니까?”


부총리는 평소 그렇게 예의 바르던 김 부장이 딴 사람처럼 구는 것이

참으로 이상스러웠다.  구미 출신인 그는 신현확을 동향 선배로 항상

깍듯이 대해왔다.  그런데 그날따라 김 부장은 몹시 초조해하고

서두르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고, 그가 움직일 때마다 무장한 정보부 요원들이

그림자처럼 그를 밀착 경호했다.  ‘뭔가 있구나’하는 직감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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