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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마당

못다한 이야기들

양화진의 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약 170기가 있다.

저마다의 사연은 한 권의 책으로 담을 수 없을 것이고 또 이곳에 묻히지 못하고

평양 등지에 묻힌 분들도 꽤 많다.


미주리 출신으로 오번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파송된 월터 존슨 선교사가

있다.  항해 도중에 귓병에 걸린 부인 에밀리 존슨은 고베에서 귀 수술을 받고

그곳에서 사망했다. 홀로 내한한 존슨 목사는 전도 활동을 준비하다가 전연두에 걸려 서울에서 죽음을 맞고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혔다. 30세 때 일이다.

묘비를 보니 ‘죽도록 충성을 다했느니라Faithful unto death’’가 기록되어 있다.


안나 밀러는 1892년 11월15일 북 장로교 선교사인 남편 프레드릭 밀러와 함께

내한했다.  남편 밀러는 경신하교를 책임지기도 하고 연동교회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며, 충북 청주에 최초로 복음을 전하고 44년 동안 활동한 전도자다.  

1905년 찬송가 [공중 나는 새를 보라588장]를 비롯해서 

예수님은 누구인가96장, 친애하는 이 죽으니294장, 주의 말씀 듣고서204장,

맘 가난한 사람427장 등을 작사작곡했다. 

안나밀러는 1903년 6월17일 38세로 사망했다. 첫아들 프레드밀러,둘째 아들

프랭크 밀러도 사망했다.  큰 아들은 8개월, 둘째는 출생한 지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다. 


  또 한 가지 기록으로 남겨둬야 할 것은 전주에 있는 전킨의 묘비 앞쪽 바닥에

직사각형 돌이 3개 있는데, 비바람에 글씨가 거의 알아 볼 수 없게 되었다.  

8남매 중에서 일찍 유명을 달리한 아이들 3명이다.  


  그 시절 선교사 아이들과 아내들의 희생이 컸다. 이 땅에서 삶이란 것이 

나그네 삶이라고 하지만 먼 이국에서 복음의 빛을 전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가족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1894년 여름은 이 때의 사람들에게 유난히도 불안하고 더운 날들의 연속

이었다.  청일전쟁과 동학농민운동, 폭염까지 한반도를 달구었던 시절이었다.

일본군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해 베이징 궁궐까지 난입하고, 한반도는  

혼비백산해 백성들의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미 해병대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투입되었고 자국민들에게 꼼짝 말고 

집안에 머물도록 명령했다.  당시 상황을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 부인은

이렇게 증언했다.


  전쟁 동안에는 모두 서울에 남아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몹시도 무더운

  여름날 울안에만 갇혀 지내던 선교사들이 병에 걸렸다.  전킨목사도 우리

  집에서 여름을 보냈지만 이이 하나가 죽고 말았다. 몇 주 동안의 더위에 

  희생된 사례다.  아이들도 여름내내 앓았다. 에비슨가의 2-3명, 일렌가의

  2명, 아펜설러가의 2명동 마찬가지다.  홀 의사는 열병에 걸려 죽었다.

  번턴 부부의 아기도 그해여름에 죽었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에는 “일군과 청군이 맞붙어 서로 싸워

서울에서 의주까지 병기가 통과하는 곳은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선교사 등은 서울로 피신하고, 동학군은 산골로 도피하니”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