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동을 지나다 보면 H부인의 경우가 특히 생각이 난다. 그녀는 사려 깊고 조용한 여성이었다. 오른쪽 유방암으로 수술 후 1년 동안 잘 지내다가 再發(재발)하여 抗癌(항암)치료를 하였는데 치료 후 3년 정도 건강하게 지내다가 재발하여 호스피스에 의뢰된 경우였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이 환자를 방문하였는데 라포(Rapport-의료진과 환자와의 사이에 형성되는 신뢰관계·필자注)가 만들어지면서 H부인은 낮은 목소리로 조용조용 자신의 지나온 삶과 질병 경험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남편은 고위 공무원이었으며 자녀들도 다 자라서 막내가 대학생이었던 H부인은 6년 전 처음 癌이라는 진단을 받고 移動式(이동식) 침대에 누워 수술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하나님, 살려만 주신다면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하고 기도드렸고 그후 종교를 가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물론 수술 당시 그녀는 종교인이 아니었으며 더구나 그 수술실 앞에 가기 전까지는 한 번도 하나님을 생각해 본 적도, 불러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동식 침대에 누워 곧 수술실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지나간 삶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 전까지 그녀는 자신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인간이 노력하면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였기에 박봉인 남편의 월급을 가지고도 알뜰하게 살며 최선을 다해 자녀를 양육하는 등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왔으나 그 순간, 인생에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절반밖에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再發하여 抗癌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는 「아!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삼분의 일 정도밖에 안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으며 성직자와 교우들이 방문하여 기도해 주는 것이 마음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시 재발하여 完治(완치)를 위한 치료는 어렵고 증상조절을 위한 호스피스 치료가 필요한 상태에 이르자 「人生이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전부가 그분에 의해서 되어지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호스피스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지나면서부터 H부인은 「예비적 憂鬱(우울)」을 경험하기 시작하였다. 죽어가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연구했던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퀴블러 로스에 의하면 「예비적 憂鬱」이란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면서 미리 슬퍼하는 상태」이다. H부인 역시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알았으며 그것을 생각하며 슬퍼하였기에 감정은 한없이 낮아져서 말이 없고 고요하였다.
『利己的으로 살아온 삶이 후회스럽다』
가끔씩 깊은 한숨을 쉬곤 했는데 들릴 듯 말 듯한 낮은 소리로 천천히 이야기한 것은 『떨·어·지·는·저·낙·엽·을·내·가·다·시·볼·수·있·을·까·나·는·이·걸·생·각·해·봐·요』라는 것이었다.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모든 것이 다 생소해 보이고 「이게 마지막이구나. 지금 보는 것을 다시는 보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심각해지고 진지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을 살펴보며 문득 생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해서 가만히 그것들을 음미하곤 했다. 그러면서 이제 서서히 다가오는, 곧 닥치게 될 자신의 떠남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세상과 다가올 세상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이런 감정적 분위기는 삶의 일상적인 소란스러움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인데 환자는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면서 웃고 있으면 「저·게·뭐·이·저·렇·게·재·미·있·을·까?」 의아스러워진다고 하였다.
한동안 「예비적 우울 단계」에 머물러 있던 H부인은 어느 날 나에게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가만히 돌이켜보니 모두가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利己的(이기적)으로 살아온 삶이요, 이웃과 국가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서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하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애에서 자신이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고 하면서 臟器(장기) 기증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필요하면 屍身(시신) 전부라도 기증하고 싶으니 방법을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가정호스피스 팀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어졌고 먼저 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그 다음으로 암환자의 장기가 이식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H부인에게 남편과 자녀들에게 자신의 이런 뜻을 직접 알리고 동의를 얻도록 하였으며 의사소통이 여의치 않으면 돕겠다고 하였다.
한편으로 장기 기증 및 시신 기증에 대해 알아본 결과 암환자의 경우 각막이식만이 가능하며 屍身 기증은 의과대학생들의 해부학 실습을 위해 쓰여진 후에 뼈를 보관하거나 정중하게 장례를 치러 드린다고 하였다. H부인은 기뻐하면서 이 두 가지를 다 하기 원하였으나 가족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갑작스런 H부인의 말에 가장 충격을 받은 이는 남편인 듯하였다. 자녀들은 울면서도 어머니의 뜻이 그러하다면 따르겠다고 하였으나 남편은 필자를 좀 만나자고 하였다. 호스피스 사무실로 찾아온 H 부인의 남편은 이 문제는 생각해 보지도, 상상해 보지도 않은 것이었다고 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사실 臟器 기증을, 더구나 屍身 기증을 하고 싶다는 환자의 말을 듣고 그 방법을 알아보는 동안에 이 문제는 필자 자신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호스피스를 시작하고 나서 臟器기증을 제안한 것은 H부인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는 필자 자신도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갑작스레 환자가 꺼낸 話頭(화두)로 인해 내 가슴도 콩닥거리게 된 것이었다.
「필자인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죽게 되었다고 해서 내 몸 일부를 떼어주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더구나 내 몸을 解剖(해부)하라고 내어주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해부학 실습실에서 보았던 死體(사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러한 話頭에 대해 필자 역시도 자신을 省察(성찰)하고 있던 중이었다. 당시 함께 일하던 왕매련(Marian Kingsley) 교수는 미국 감리교 선교사였다.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호스피스 책임자를 겸하고 있었는데 이분의 경우 선교지인 韓國(한국)으로 떠나오기 전 遺書(유서)와 함께 臟器기증서에 서명을 하고 왔으며 安息年(안식년)마다 그것을 검토하고 再서명해 왔다고 하였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그때가 이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 경우였다.
그래서 남편의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는 부인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남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되물어 보았다. 남편은 몹시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신은 종교인도 아니고 원칙적으로 동의할 수 없으나 사랑하는 아내의 마지막 희망사항을 무조건 거절할 수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충분히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준 후 환자를 포함한 가족회의를 열어 의논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였다. 먼저 H부인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말할 기회를 주고, 그 다음 나머지 가족이 한 사람씩 자신들의 의견을 말한 후 의논해서 결정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집에 돌아간 H부인의 남편은 그날로 가족회의를 소집하였다.
당시 H부인의 상태는 이미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죽기 2~3일 전에 도달하는 臨終過程(임종과정)을 시작하고 있었으므로 본인 스스로 원활한 臟器이식을 위해 병원에 입원할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氣力(기력)이 너무 떨어지기 전에 가족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의 의사를 밝히도록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다.
가족회의에서 H부인은 「인간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였으며 무의미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에 종지부를 찍기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을 위해, 人類(인류)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한 번 해 보고 싶다고 하였다.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고 학생들의 解剖學 실습을 통해 醫學(의학) 발전에 이바지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하면서 그렇게 된다면 기쁜 마음으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부인이 떠나고 난 뒤 못 견디게 그리움을 느낄 때 山所(산소)마저 없으면 어디 가서 눈물을 흘리며 아내 잃은 것을 슬퍼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屍身기증에 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래서 H 부인도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하여 角膜(각막)만 기증하고 屍身은 기증하지 않기로 절충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죽음
가족회의에서 이렇게 결정이 내려진 후 바로 입원한 H부인은 이튿날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평화스럽게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眼科(안과) 팀이 즉시 角膜을 채취하여 H부인의 양쪽 각막은 다른 두 사람에게 각각 이식되어 계속해서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호스피스에 가입한 지 1백2일 만에 召天(소천·기독교에서 쓰이는 말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하늘로 간다」는 뜻-편집자 注)한 그녀가 남긴 것은 생전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되어 기뻐하는 두 사람의 감사와 나도 우리 어머니처럼 아름답고 훌륭한 삶을 살겠다는 자녀들의 다짐, 그리고 그 아름다운 마음을 길이 기억하는 남편의 그리움이었다. 또한 H부인과 1백여 일을 함께 했던 시간들은 나에게도, 우리 호스피스 팀 전체에게도 인간의 몸이 갖는 의미와 臟器기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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