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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마당

슬퍼하지만 마라

링컨에게 슬픔은 간혹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유년시절초부터

시작된 슬픔은 청년 시절을 거쳐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를 따라다녔다.

혹자는 말하기를, 개인적인 상실감이 격동기에 처한 국가의 모범적인 지도자가 되도록 그를 준비시켰다고도 한다.  링컨은 각별히 사랑했던 이들을 거의 잃었지만, 신앙은 결코 잃지 않았으며 하나님 사랑도

식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의 깊은 슬픔을 사용하셔서 애통하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산 자들에게서 기쁨을 찾게 하며, 주변 사람이

힘을 얻게 만드신다.  예사롭지 않은 슬픔을 추스르고자 링컨은 예사로운 일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하곤 했다.  

 

 특히 둘째 아들이 죽었을 때는

“아, 내 아들을 이렇게 보내다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소.” 목이 맨

링컨은 네살에 지기를 떠난 아들 옆에서 머리를 감싸 쥐고 흐느끼며

서 있었다.  “그 큰 체구가 덜덜 떨렸어요.” 영부인의 재단사가 한 말이다.

 

 링컨은 아홉살 때부터 친척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유년 시절을 보낸 인디애나 주 시골 동네를 원인 모를 질병이

휩쓸고 지나간 적이 있었다.  링컨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도 곧 바로 돌아가셨다.  몇달 뒤 어느

목사가 그 지역을 지나고 있었는데, 어리디어렸던 링컨은

그목사에게 어머니의 묘지 앞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해 달라고

간청했다.  

 

이 모든 슬픔을 겪으면서도, 링컨은 회의를 주재하고 중대 사안을

결정했으며, 연설을 하고 주변 사람들을 격려했다.  링컨이 쓴

수 많은 애도의 편지를 보면, 불굴의 인내심을 읽을 수 있다.

오랜 친구이자 동료였던 월리엄 매컬러가 미시시피 주의 커피빌

근처에서 기습 공격을 지휘하다 전사했다.  링컨은 그의 딸,

패니 매킬러에게 위로의 편지를 썼다.

 

 어떻게 온전한 위로를 줄 수 있겠니.  시간이 약일 뿐이지.

앞으로 나아질 거란 생각도 들지 않을 거야.  그렇지?

하지만 그렇지 않단다.  분명히 다시 행복해 질 수 있거든.

이 사실을, 이 확실한 사실을 기억하면 비참한 기분이 다소

나아 질 거다.  나도 이런 일을 충분히 겪었기에 이렇게 말하는

거란다.  애야, 곧 좋아질 거라고 믿으렴.  비통해 하지 말고 아버지와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을 떠올려 봐.  그래도 슬프긴 하겠지만

기분이 좀 나아질거야.  이전과는 다른 순수하고 특별한 느낌이 들게다.

 

 링컨은 아무리 공무가 많아도, 격려 편지 쓰는 일을 간과하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한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 적도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사별의고통을 덜어 주시고, 사랑했던 자식의

소중한 기억만이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자유의 제단에 바친 고귀한

회생이기에 어머니께서 느낄 소중한 자부심을 항상 간직하시길 빕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알았기에 그슬픔을 홀로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천국의 평안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슬픔보다

깊숙이 다가온다고 믿었다.   링컨은 자신의 연약함이나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변명하지 않았고, 연약한 이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는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사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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