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許筠·1569~1618이 조선의 음식에 대해 쓴 <도문대작>이란 책을 보면 1610년 허균이 전라도 함열(지금의 익산)로 귀양을 가게 된다. 허균은 귀양살이 중에서도 ‘사람들이 이곳에서 가는 뱅어와 준치가 많이 난다고들 하기에 여기로 유배 오기 바랐다. 그런데 금년 봄에는 일절 나지 않으니 또한 제 운수가 사납다’라는 내용도 보인다. 알아주는 식도락가였던 허균이 병어를 먹지 못해 아쉬워했다니 그 맛이 보통은 아닌 듯하다.
준치는 산지인 신안, 목포 등에서는 주로 회무침으로 먹는다. 이때 회는 납작하게 포를 뜨지 않고 전어회처럼 길게 썬다. 이는 잔가시가 많기 때문이다. 매콤하고 새콤한 초고추장에 무쳐낸 준치회무침은 세발낙지, 민어회, 병어회 등과 함께 ‘목포9味’이기도 하다.
준치를 굽거나 찜으로 해서 먹어도 별미다. 우리 선조들은 음력 5월 5일 단오에 준치를 넣은 준치만두와 준칫국을 먹었다.
준치만두는 준치의 살과 소고기로 완자를 만들고 그 위에 전분을 입혀 쪄냈다. 초장을 곁들여 먹기도 하고 준치 뼈로 우린 육수를 부어 먹기도 했다. 이렇듯 단오에 준치를 먹은 이유는 준치가 원기회복에 도움이 되기에 농번기를 앞두고 힘을 북돋우려는 의도라 전해진다.
‘썩어도 준치’라는 준치도 6월부터 8월까지가 제철이다. 준치는 청어과에 속하는 등 푸른 생선으로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잘 잡힌다. ‘썩어도 준치(원래는 ‘물어도 준치 썩어도 생치’)’란 속담은 ‘값어치 있는 물건은 흠집이 나더라도 본래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통한다. 이 속담에는 중국 명나라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명나라 주원장은 남경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옮긴 후에도 맛좋은 준치를 잊지 못하고 제사상에 올리라고 명했다. 그러나 준치는 남경에서만 잡히는 것이어서 신하들은 1,300km나 떨어진 남경에서 준치를 구해 북경까지 가지고 와야 했다.
오랜 이동 기간 동안 준치의 태반이 썩은 것은 물론이다. 그나마 괜찮은 것은 제사상에 올리고 썩은 것은 북경 출신의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처음 준치를 맛본 신하들은 “원래 준치 맛이 이렇게 좋냐”며 그 맛을 극찬했다 한다. 말 그대로 썩어도 준치였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준치의 한 종류인 시어鰣魚를 ‘팔진미’ 중 하나로 꼽는다.
준치는 전어나 꽁치처럼 잔가시가 많다. 그래서 과거 우리 선조들은 권력이나 명예, 재물을 너무 탐내면 불행이 닥칠 수 있다는 뜻으로 ‘시어다골鰣魚多骨’이라 했으며 이런 교훈을 늘 명심하란 뜻으로 출세한 친구나 친지들에게 준치를 선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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