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소중한 편지
남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철 늦게 편지를 쓴다고
하겠지만 아직도 어머님께 못다한 사연이 구름처럼 쌓여 있습니다.
어머니, 우리가 처음 연기나는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와서
자리잡은 곳이 원효로 3가 전차 종점 건너편에 있던 연립주택이었지요.
저는 이 집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지요.
좁은 마당 담장 곁에는 한여름부터 장작을 조금씩 모아서 쌓아 놓아야
한겨울을 보낼 수 있었지요.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맏이였던 나는 집안의
일꾼이 되어야 했지요. 그런데 그날은 장작을 쪼개다 손에 물집이 생겼지요.
그날 밤 어머니는 바늘로 내 손에 물집을 따 주시면서 “네가 엄마를 도와
주느라고 물집이 생겼구나.“ 했을 때 저는 하늘을 나는 것같이 마음이
들뜨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고생하시는 어머니께 도움이 되는 자식이 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도움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치 않았습니다.
철없는 저는 도움은커녕 속만 상하게 해드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전쟁이 났지요.
아버지는 국군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시고 어머니와 우리 삼남매만
서울에 남아 있게 되었지요. 어머니는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옷가지와 놋그릇 은수저 등을 우리 집 앞 큰길가에 들고 나가
신문지 위에 펼쳐놓고 하루 종일 땡볕에 젖먹이 셋째를 껴안고 앉아
있었지요. 나는 어머니 곁에서 놀기만 했지요.
그러다가 나도 무언가 해본다고 신문팔이로 나섰지요. 원효료에서 시청까지
걸어가 인민군이 찍어내는 신문을 받아다 충무로나 명동 근처에서 팔았지만
열장을 받아다 겨우 한 장을 팔수 있었지요.
어느 날 중앙우체국 근처에서 인민군 장교가 나를 불러세우고 신문 한 장을
사면서 북쪽화폐를 주었지요. 계산을 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나를 보면서
장교가 ‘나도 집에 너만한 아이가 있어 거스름 돈은 그냥 가져’하고 가버렸어요.
그날 어머니께 북한 화폐를 보이며 이 말을 하자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이 신문팔이를 그만두게 하셨지요. 자존심이 상하셨을까요?
며칠 뒤 내가 아이들 따라 세검정 자두밭에 가서 자두 받아 팔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웃으면서 돈을 주었지요. 그런데 이 자두도 잘 팔지 못해서
결국 동생들과 함께 먹어 없앴지요. 어머니는 “서툴러서 그렇지 뭐“ 하시면서
내 등을 두드려 주셨지요.
돌아보면 뭐 하나 제대로 도와드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동생들과 살 때였습니다.
일주일에 겨우 한번 꼴이나마 어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원고를 다 정리하시고 유작 시집도
엮어 내셨지요.
제가 찾아가 문안드렸지만 몇시간 앉았다 오는 것 밖에 없었지요.
어머니,
안방에 혼자 계시던 어머니와 헤어져 집문밖에 나설 때면 눈 앞이
캄캄했습니다. 부엌에 들어 갔을 때 혼자 끼니를 해 드시느라고
새까맣게 타버린 양재기와 때묻은 냄비를 보면서 어떻게 해 드릴 수
없었던 저는 얼마나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 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 바빠서 잘 찾아뵙지 못해서”하고 말문을 열면 어머니는 내 손을
잡으며 “다 안다”하고 저를 다독거리셨지요.
어머니, 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시기 전 다니는 길을 지금도 걷고 있습니다.
내가 강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를 찾아갔다고 나올 때면
내 가방을 들고 대문 밖까지 나와서 가방을 내밀며 “너무 힘들게 하지마라”
하면서 손을 흔들던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병드신 몸으로 가방을 들고 대문 밖까지 나오신 이유를 저는 잘 알지요.
그런데 이제 겨우 어머니께 맛있는 사과 한 개라도 사 드릴 수 있게 되었지만
어머니 곁에 있지를 못합니다. 이 좋은 세상에 사과 한 개라면 아이들도 웃겠지만
우리 가족이 이틀을 굶었을 때 수수떡 다섯 개를 사서 우리 형제에게 두 개를
나누어 주시고 세 개를 신문지에 싸서 “내일 아침에 너희 줄게” 하시면서
어머니 혼자 굶으시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해서 무력감만 가득 한 제 심정에
어머니를 향한 정표를 보일 뿐입니다.
어머니, 아직도 밥상 앞에서 어머니를 보내지 못하고 있는 아들의 편지를
기쁘게 받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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