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현 권력구조를 현실로 받아들인다』
5월26일 文亨泰 국회 국방위원장이 긴급히 나를 보자고 연락이 왔다. 그 전날 밤 자신의 지역구인 光州에 갔다가 돌아와서 나와 함께 사태를 걱정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그는 중재 정책을 지지해 왔으나 법과 질서를 회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소요가 더욱 확산될 뿐이라고 말했다.
文亨泰의 생각은 『공산당들이 시내에 들어와 있거나 아니면 외부에서 과격분자들을 조종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는 것. 文위원장은 이것은 한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내일 아침 일찍 군대가 시내로 진입할 것이라고 확인해주면서 오히려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헤어지면서 나는 文亨泰 위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국군의 단결을 강조하는 것은 순전히 북한에 대한 抑止力(억지력)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군 내에 더 이상 動搖(동요)를 용납할 수 없다. 미국은 한국군 내의 어떤 반대 세력이 미국의 지원을 요청해 와도 결코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현재의 권력체제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협력하고 있다. 그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은 전적으로 한국인의 문제다』
文亨泰는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굳은 악수를 나누면서 『아주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1980년 8월8일 全斗煥의 요청으로 신라호텔에서 2시간 동안 비공식 조찬을 가졌다. 전적으로 그쪽에서 준비한 조찬은 에그 스크램블, 베이컨, 감자 튀김, 파이 등 완벽한 서구식 아침이었다. 全斗煥은 음식보다 담배를 더 많이 피웠다. 권력이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데다가 며칠 전 4星 將軍으로 승진까지 한 全斗煥에게 「로열 수트」라는 방 이름이 어울렸다.
全斗煥은 20년 전 朴正熙 대통령처럼 쿠데타에 성공한 이후 비슷한 기간이 지나서 4星 將軍으로 승진했다. 군대의 계급은 한국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건 중의 하나다. 그러나 全斗煥은 장군 제복 대신 잘 맞춘 신사복을 입었다.
우리는 각각 통역 한 사람씩만 데리고 단 둘이 만났다. 내쪽 통역은 브루스 그랜트였고 그쪽에서는 한국인 통역이 참석했다. 평복을 입은 경호원 숫자나, 부하 직원들과 호텔 종업원들이 全斗煥에게 대하는 태도에 나는 놀랐다. 全斗煥은 내게 대해서는 아주 정중했다. 그의 모습은 느긋하고 매우 자신에 넘쳐 있었으며 거론되는 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자기 主見(주견)을 세웠다. 정말 「보스」처럼 말했다. 실제로 3주일도 못되어 그는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이다.
그는 글라이스틴 대사와 내가 한국 사태를 미국 公論圈(공론권)에 긍정적으로 비치도록 애썼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불쑥 국내 정치 상황으로 주제를 돌렸다. 그가 보기에 국민과 정부 지도자들의 관심은 안정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국민들은 경제가 잘되기를 바라고 光州 사태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全斗煥은 팔을 휘저으면서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데모나 폭동이 일어나면 가차없이 막아버릴 것이다…. 앞으로 경제가 회복될 것이고 국방을 최우선으로 가져갈 것이다』
마치 청와대에서 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들렸다.
『金大中은 우리 法에 따라 처리될 것』
金大中의 구속과 다가올 재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全斗煥은 이 문제는 외국 언론이 터무니없이 과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과 나를 두고 그렇게 혹심한 비판을 퍼붓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대한민국 국내 문제가 외부 간섭에 좌우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 법조계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나와 같은 생각이다. 우리는 야만인이 아니다. 金大中은 우리 법에 따라 처리될 것이다』
그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金大中 문제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결국 해외 군수 판매 신용 한도를 내리고 연례 한미 안보협의회(SCM)를 지연시키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全斗煥은 한미 안보협의회는 반드시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군사 협의도 중요하지만 한미간의 유대에 대해 北韓의 誤判(오판)을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全斗煥이 군사적 준비태세에 관심을 보이자 나는 현대 군사 장비 확보의 우선순위를 포함한 국방부 戰力(전력) 향상 계획(FIP)을 잘 아느냐고 물었다. 솔직히 FIP에 대하여 잘 모른다면서 자세한 계획 내용은 숙제로 생각하고 공부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게 무기 현대화의 중요한 우선순위를 물어왔다.
나는 砲兵(포병)의 확충, 對戰車(대전차) 장비 개선, 地上軍의 機動性(기동성)을 중요한 우선순위로 꼽았다. 北韓의 점증하는 공격 능력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군이 쓰고 있는 노후한 F-86 전투기는 F-5 나 F-16으로 대체할 필요를 지적했다. 全斗煥은 놀라는 것 같았다. 그는 F-86이 북한의 MiG-19보다 성능이 우수한 줄 잘못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일러 주었다.
한국 공군도 空對空(공대공) 미사일과 충분한 지상 지원 장비와 부품을 갖추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군의 경우도 對잠수함 및 對水雷(수뢰) 장비를 우선 갖추고 나서 국산 快速艇(쾌속정)으로 전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의 간단한 브리핑을 열심히 듣고 나서 全斗煥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戰力 현대화에는 퍽 많은 돈이 들겠어요. 財源(재원) 마련이야말로 정부가 해결할 큰 과제이군요』
그의 마지막 결론은 현재의 관료 체제로는 그 일을 해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全斗煥은 崔대통령이 『사람은 좋지만 관리 능력이 없다』고 했다. 『보통 몇 시간이면 해치울 수 있는 정책 보고서 결재나 정책 결정을 며칠씩 묵힌다』는 것. 그래서 여러 가지 특별 위원회(注-國保委)를 만들어 『업무를 효율적이고 단호하게 처리하여 정부를 버텨나간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회 구성의 약 25%를 차지한 군인들은 야전 군인이 아니라 전문적인 기술자들이라는 것.
나는 崔대통령이 조만간 辭任(사임)한다는 소문에 대하여 한 마디 했다. 『안정을 위하여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全斗煥은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면서 짧게 대답한다.
『글쎄, 소문이겠지요』
무뚝뚝한 한 마디로 그것은 소문 이상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