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크랩

회고 김유신 장군

의 동방 정책 견제한 김유신의 對倭 외교
 
 
  李勣(이적)의 당군이 평양성 공위전의 주력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신라은 사수 전투, 평양성의 大門(대문) 전투, 평양 軍營(군영)의 전투, 평양 城內(성내) 전투, 평양 南橋(남교) 전투에서 모두 승전함으로써 고구려 평정에 결정적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당군은 승전의 果實(과실)을 거의 독식했다.
  
  이적은 66810월 보장왕을 비롯하여 왕자, 대신, 백성 등 20만여명을 포로로 삼아 개선장군으로 귀국했다. 문무왕도 고구려인 7천여명을 포로로 데리고 귀환했다. 문무왕은 남한주에 이르러 여러 신하들에게 김유신의 공적에 대해 말하기를, 그가 나가면 장수의 일을 하였고, 들어서는 재상의 일을 하였으니 그 공적이 매우 크다. 만일 공의 한 가문에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나라의 흥망을 알 수 없었다라고 했다. 이해 겨울 1022일의 논공행상에서 김유신에게는 태대각간의 직위와 식읍 5백 호가 내려졌다. 문무왕은 또 그에게 수레와 지팡이를 하사하고, 殿上(전상)에 오를 때 허리를 굽힌 채 빠르게 걷는 신하의 예법을 따르지 않게 했으며, 그의 屬官(속관)들에 대해서도 각각 관등을 한 급씩 올려 주었다.
 
  그러면 고구려를 멸망시킨 평양성 공위전에 직접 참전하지 않았던 김유신이 논공행상에서 제1위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그의 前功(전공) 때문이 아니었다. 日本書紀天智(천지) 7(688) 의 기사는 주목할 수밖에 없는 김유신의 행적을 전하고 있다.
  
  이해 912일 신라는 급찬 金東嚴(김동엄)을 파견하여 일본에 調物(조물)을 보냈다. 912일이라면 평양성이 함락되기 직전이니까 문무왕은 親征(친정)중이었다. 국왕 부재중의 王京(왕경)에서 김동엄의 왜국 파견을 주도한 인물은 김유신이었다고 해도 좋다.
 
  왜냐하면 926일 일본의 內大臣(내대신) 中臣鎌足(나카도미노 가마다리)이 중() 法弁(호오벤)秦筆(신히쓰)를 시켜서 김유신에게 배 한 척분의 回謝品(회사품)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어 29일에는 일왕 天智가 문무왕에게 進調船(진조선) 한 척을 보냈다.
  
  天智·中臣의 관계는 일본판 김춘추·김유신 동맹이었다. 642년 황자 中大兄(중대형)大化改新이라는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을 때 中臣中大兄의 오른팔이었는데, 中大兄661년 즉위하여 천지천황이 된 것이다. 이후 中臣은 일본 최고의 문벌인 藤原(후지와라) 가문의 시조가 되었다.
 
  김유신이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구사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신라와 왜국은 仇敵(구적) 관계였다. 신라는 고구려에 대한 최후의 공격을 하기 위해 병력을 대거 북상시키면서 배후 왜국의 동향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왜국은 663년 백제 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해 27천명의 大兵을 파견했다가 백강구 전투에서 패배한 후 九州(규슈) 일대에 산성을 쌓고, ·당 양군이 자기들을 치러 오지 않을까,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김유신의 메시지는 그런 왜국의 위기 의식을 해소시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신라가 주도적으로 왜와 국교를 재개한 것은 고구려 전쟁 기간중의 배후 위협을 제거하려는 의도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신라의 수뇌부는 이미 對唐 전쟁이 불가피한 것으로 예견하고 있었다. 따라서 김유신의 對日 외교는 향후 對唐 전쟁에 대비한 주변 외교였다고 보아야 한다.
 
  일본은 이해 11월 초순에도 문무왕에게 비단 50, 풀솜(綿) 5백 근, 가죽 1백 장을 보냈다. 이런 교류는 나·왜 양국이 왕은 왕끼리, 重臣(중신)은 중신끼리 격에 맞는 인사를 차리면서 무역을 했다는 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것은 당의 팽창 정책을 견제하는 나·왜 간의 관계 개선이었다. 
  
  김유신은 동아시아 세계를 움직이는 핵심 인물이었다. 당 고종도 김유신 앞으로 조서를 보내 그의 전공을 표창하고, 입조할 것을 명했다. 그러나 김유신은 입당하지 않았다. 고구려 멸망 후에 곧 나·당 간에 힘겨루기가 표면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입당할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육 분별  (0) 2017.07.25
돕고사는 세상  (0) 2017.07.25
공감의 처리 -ㅡ차분한 공감  (0) 2017.07.19
우리는 왜 하나님을 믿는가?  (0) 2017.07.17
YS 민주화 투사  (0) 2017.07.15